분기 시장 동향 보고를 하루 앞두고 정주임이 초안을 올렸다. 평소라면 사흘은 걸렸을 분량이었는데 반나절 만에 완성됐다. 정주임은 AI 도구로 자료를 정리했다고 했고, 문장도 매끄럽고 구성도 깔끔했다. 마감에 쫓기던 박팀장은 목차와 결론만 훑어본 뒤 그대로 본부장에게 넘겼다.
며칠 뒤 본부장 주재 회의에서 문제가 터졌다. 보고서에 경쟁사의 신제품 출시로 적힌 내용이 사실은 출시 계획이 철회된 사안이었다. 본부장은 이 내용을 근거로 이미 다른 부서에 대응 방안을 요청해 둔 상태였다. 박팀장은 회의실에서 출처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고, 사과와 정정 보고를 하느라 하루를 보냈다.
자리로 돌아온 박팀장은 정주임을 탓하려다 멈췄다. 정주임은 도구가 정리해 준 내용을 믿었고, 팀장이 검토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팀장은 반대로 정주임이 확인했을 것이라 여겼다. 결국 누구도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서로를 안전장치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빨라진 속도에 맞는 확인 절차가 팀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