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Business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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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까지 남는 사람이 일 잘한다"는 착각 — 시간을 줄였더니 생산성·채용·이직률이 모두 좋아졌다

가장 오래, 가장 적게 — 한국은 2024년 연 약 1,865시간(OECD 7위)으로 여전히 길게 일하지만, 시간당 생산성은 31위로 7년째 30위권에 머물며 노동시간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야근의 경제학 — 스탠퍼드 펜카벨 연구에 따르면 생산성은 주 48~49시간 이후 급락하고, 주 70시간 노동의 총산출은 56시간과 거의 같다. 야근은 무료가 아니라 단지 비용이 손익계산서에 찍히지 않을 뿐이다. 한국이 만든 첫 증거 — 2026년 3월 공개된 경기도 주 4.5일제 1년 실증(107개 기관·3,050명)에서 주당 4.7시간 줄고도 1인당 생산성은 2.1% 올랐고, 이직률은 22.8%에서 17.4%로 떨어졌다. 측정의 함정 — 성과는 측정하기 어렵고 시간은 측정하기 쉽기 때문에 야근 문화가 살아남는다. 포괄임금제는 야근 비용 감각을 무디게 하고, 만성적 야근은 헌신의 지표가 아니라 경영 설계 실패의 신호다. 단축이 아니라 재설계 — 업무 프로세스 없이 시간만 줄이면 '압축노동'이라는 부작용이 따른다. 경영자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아니라 "그 시간이 얼마나 가치를 만드는가"다.

박소유 책임기자입력 2026년 6월 24일수정 2026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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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도 서울 어딘가의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그 시간이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사진 = KBR 자료사진]
오늘 밤도 서울 어딘가의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그 시간이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사진 = KBR 자료사진]

가장 오래, 가장 적게 — 한국은 2024년 연 약 1,865시간(OECD 7위)으로 여전히 길게 일하지만, 시간당 생산성은 31위로 7년째 30위권에 머물며 노동시간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야근의 경제학 — 스탠퍼드 펜카벨 연구에 따르면 생산성은 주 48~49시간 이후 급락하고, 주 70시간 노동의 총산출은 56시간과 거의 같다. 야근은 무료가 아니라 단지 비용이 손익계산서에 찍히지 않을 뿐이다. 한국이 만든 첫 증거 — 2026년 3월 공개된 경기도 주 4.5일제 1년 실증(107개 기관·3,050명)에서 주당 4.7시간 줄고도 1인당 생산성은 2.1% 올랐고, 이직률은 22.8%에서 17.4%로 떨어졌다. 측정의 함정 — 성과는 측정하기 어렵고 시간은 측정하기 쉽기 때문에 야근 문화가 살아남는다. 포괄임금제는 야근 비용 감각을 무디게 하고, 만성적 야근은 헌신의 지표가 아니라 경영 설계 실패의 신호다. 단축이 아니라 재설계 — 업무 프로세스 없이 시간만 줄이면 '압축노동'이라는 부작용이 따른다. 경영자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아니라 "그 시간이 얼마나 가치를 만드는가"다.

야근 많은 회사가 일 잘하는 회사? 한국이 직접 만든 데이터의 답

경기도 주 4.5일제 1년 실증부터 OECD 생산성 통계까지, 2026년 경영자가 다시 던져야 할 질문


밤 아홉 시, 사무실 창문에 불이 켜져 있다. 많은 한국 경영자에게 이 장면은 오랫동안 미덕의 상징이었다. 늦게까지 남아 있는 직원은 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고, 야근이 잦은 부서는 일이 많은 만큼 성과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 그러나 이 믿음의 밑바닥에는 한 번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가정이 깔려 있다. 오래 일하는 것과 잘 일하는 것이 같다는 가정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야근이 많은 회사는 정말로 일을 열심히 하는 회사일까, 아니면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고 있다는 신호를 매일 밤 불빛으로 내보내고 있는 회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 한 세기 동안 축적된 노동경제학과 최근 한국에서 나온 첫 대규모 실증 데이터는 모두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가장 선명한 증거를 우리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바로 우리 자신, 한국이다.



가장 오래 일하지만, 가장 적게 만들어내는 나라

한국은 오랫동안 '부지런한 나라'의 대명사였다. 실제로 노동시간은 길다. OECD 비교 기준으로 2024년 한국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약 1,865시간으로, 회원국 가운데 7위 수준이다. 다만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2014년 2,075시간이던 노동시간은 10년 만에 210시간이 줄어, 같은 기간 OECD 회원국 중 감소폭이 가장 컸다. 그 결과 한때 287시간에 달했던 OECD 평균과의 격차는 2024년 약 158시간까지 좁혀졌고, 한국의 노동시간은 이스라엘보다 짧아져 이제 미국을 추격하는 위치에 섰다. 그럼에도 여전히 평균보다 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이 일하는 만큼 더 많이 만들어낼까. 정반대다. 일본생산성본부가 OECD 통계를 분석해 2026년 1월 내놓은 결과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7.5달러로 OECD 회원국 가운데 31위에 그쳤다. 더 뼈아픈 것은 추세다. 한국은 2018년 20위권에서 밀려난 이후 7년째 30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ECD 평균 대비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21년 77%까지 올랐다가 4년 연속 하락해 2024년에는 72.4%로 떨어졌다. 한국생산성본부가 2025년 9월 발표한 별도 분석에서도 2023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1.1달러로 OECD 37개국 중 24위에 머물렀다. 측정 방식에 따라 순위는 다소 다르지만, 메시지는 한결같다. 한국은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 중 하나이면서, 가장 적게 만들어내는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모순을 더 날카롭게 보여주는 사건이 2018년의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이었다. 가장 긴 근로시간을 줄이되 시간당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였다. 실제로 노동시간은 빠르게 줄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 즉 생산성 상승은 함께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만 줄었다. 이는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중요한 진실 하나를 가르쳐준다. 노동시간과 생산성은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을 줄인다고 생산성이 저절로 오르지도 않지만, 시간을 늘린다고 성과가 저절로 늘지도 않는다.


시간은 산출이 아니라 투입이다: 야근의 경제학

여기서 경영자가 반드시 구분해야 할 개념이 있다. 노동시간은 '투입'이고 성과는 '산출'이다. 야근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는 이 둘을 혼동한다. 투입을 늘리면 산출이 비례해서 늘어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생산 활동에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한다. 일정 지점을 넘어서면, 한 시간을 더 투입해도 그만큼의 산출이 따라오지 않는다.

이 현상을 정밀하게 측정한 고전적 연구가 스탠퍼드대학교 존 펜카벨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산출 기록을 분석해, 노동시간과 시간당 생산성의 관계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John Pencavel, "The Productivity of Working Hours", The Economic Journal, 2015). 분석에 따르면 시간당 생산성은 주 48~49시간 근처까지는 비교적 유지되지만, 그 지점을 넘어서면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 55~56시간을 넘어가면 추가된 시간이 만들어내는 산출은 거의 사라진다. 결정적인 대목은 이것이다. 주 70시간을 일한 노동자의 총산출은 주 56시간을 일한 노동자와 거의 같았다. 다시 말해, 56시간을 넘긴 후의 14시간은 사실상 공짜로 흘려보낸 시간이었다.

100년 전 공장 데이터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 곡선은 이후 수많은 후속 연구에서 사무직과 지식 노동자에게도 반복적으로 확인됐고, 오늘날 노동시간 정책의 기본 전제가 됐다. 발견이 주는 교훈은 직관과 정반대다. 주 70시간 일하는 직원과 주 56시간 일하는 직원이 비슷한 양의 일을 끝낸다면, 그 추가된 14시간 동안 회사는 무엇을 얻은 것일까. 산출은 얻지 못했다. 대신 잃은 것은 분명하다. 피로, 집중력 저하, 실수의 증가,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건강과 사람이다. 야근은 무료가 아니다. 단지 그 비용이 손익계산서에 곧바로 찍히지 않을 뿐이다.


야근하는 몸: 손익계산서에 찍히지 않는 비용

장시간 노동의 비용 중 가장 무겁지만 가장 늦게 드러나는 것이 건강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가 2021년 학술지 'Environment International'에 공동 발표한 분석은 이 비용을 처음으로 전 지구적 규모로 추산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주 5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주 35~40시간 일하는 사람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35%,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17% 더 높았다. 2016년 한 해에만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뇌졸중과 심장질환 사망자가 전 세계적으로 약 74만 5천 명에 달했다. 더 주목할 점은 이 피해가 특히 서태평양과 동남아시아 지역, 그리고 남성에게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속한 지역이 바로 이 위험의 한복판에 있다.

건강은 가장 극단적인 비용이지만, 그 앞 단계에는 더 흔하고 일상적인 손실이 있다. 번아웃, 이직, 그리고 '있지만 일하지 않는' 상태다. 야근이 일상화된 조직에서는 직원이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평가의 기준이 되곤 한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는 것과 가치를 만드는 것은 다르다. 피로가 누적된 직원은 같은 업무를 더 오래, 더 부정확하게 처리한다. 회사는 더 많은 시간을 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낮은 품질의 시간을 비싸게 사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손실은 회계장부에 별도 항목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야근 수당은 비용으로 또렷이 보이지만, 야근이 갉아먹은 창의성, 떠나간 핵심 인재를 다시 채우는 데 드는 비용, 피로한 판단이 부른 의사결정의 오류는 어디에도 숫자로 기록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조직이 자신이 치르고 있는 진짜 대가를 모른 채 야근을 헐값의 자원으로 착각한다.


적게 일하고 더 만든다: 한국에서 나온 첫 증거

그렇다면 시간을 줄이면 정말 성과가 오를까. 이 질문에 대해, 2026년 한국은 마침내 자기 데이터를 갖게 됐다.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주 4.5일제 시범사업의 1년 치 효과 분석이 2026년 3월 공개된 것이다. 이는 한국 기업 현장에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측정한 첫 사례다.

분석 대상은 시범사업에 참여한 107개 기관, 단축에 참여한 노동자 3,050명이었다. 참여 기업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39.8시간에서 35.3시간으로 약 4.7시간 줄었다. 그런데도 임금은 깎이지 않았고 오히려 소폭 올랐다. 월 정액급여는 평균 354만 원에서 359만 원으로 약 5만 원 늘었다. 핵심은 그다음이다. 매출액 기준 노동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약 2.1%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시간을 줄였는데 생산성이 오른 것이다. 인사 지표는 더 극적이었다. 채용 경쟁률은 10.3대 1에서 17.7대 1로 뛰었고, 이직률은 22.8%에서 17.4%로 5.4%포인트 떨어졌다. 외부 고객 만족도까지 함께 올랐다. 노동시간을 줄였더니 사람도, 성과도, 평판도 좋아진 것이다.

이 결과는 단일 국가의 우연이 아니다. 2025년 학술지 '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된 보스턴칼리지 연구진의 연구(Fan, Schor 외)는 미국,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6개국 141개 조직, 2,896명의 직원을 6개월간 추적했다. 임금을 줄이지 않고 주 4일제로 전환한 결과, 번아웃은 5점 척도에서 0.44점 감소했고, 직무 만족도는 10점 척도에서 0.52점 상승했으며,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 지표도 함께 개선됐다. 연구진은 그 동력으로 더 나은 수면, 줄어든 피로, 높아진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일찍이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이 약 2,300명을 대상으로 한 주 4일제 실험에서 1인당 매출 생산성을 약 40% 끌어올렸던 사례까지 더하면, 시점과 나라와 업종을 달리한 실험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왜 시간을 줄이면 오히려 더 만들어내는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일하는 시간을 줄였는데 어떻게 산출이 늘어날 수 있는가. 결과가 직관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째는 '일은 주어진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난다'는 오래된 통찰이다. 마감이 일주일 뒤면 그 일은 일주일치 일이 되고, 마감이 사흘 뒤면 같은 일이 사흘 만에 끝나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근무시간이 무제한이라고 느껴지는 조직에서는 업무도 무제한으로 부풀어 오른다. 회의는 길어지고, 결정은 미뤄지고, 불필요한 절차가 끼어든다. 시간이라는 제약이 사라지면 낭비를 걷어낼 압력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간에 명확한 한계가 설정되면, 조직은 본능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를 덜어내기 시작한다. 경기도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 직원이 "근무시간이 줄었으니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고, 업무 집중 시간을 따로 운영하면서 효율이 더 올라갔다"고 말한 것은 이 메커니즘을 정확히 보여준다.

둘째는 집중력의 질이다. 지식 노동에서 가치를 만드는 것은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방해받지 않고 깊이 몰입하는 시간의 양이다. 피로한 상태로 보내는 야근 시간은 겉보기에는 노동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분량의 일을 더 느리고 더 부정확하게 처리하는 시간인 경우가 많다. 충분히 쉰 직원이 오전에 두 시간 만에 끝낼 일을, 지친 직원은 밤에 네 시간에 걸쳐 끝내고는 더 열심히 일했다고 느낀다. 회사 입장에서는 두 배의 시간을 쓰고 절반의 효율을 얻은 것이다.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 생산성의 전제 조건이라는 사실을, 이 실험들은 데이터로 증명한다.


그렇다면 야근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측정의 함정

증거가 이토록 일관된데도 왜 야근 문화는 끈질기게 살아남을까. 답의 상당 부분은 '측정의 함정'에 있다. 성과는 측정하기 어렵고, 시간은 측정하기 쉽다. 어떤 직원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었는지 정확히 평가하려면 복잡한 판단이 필요하지만, 누가 몇 시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는 한눈에 보인다. 그래서 관리자는 자기도 모르게 측정하기 쉬운 것, 즉 시간을 성과의 대리지표로 삼는다. 늦게까지 남은 사람이 열심히 한 사람으로 보이고, 일찍 퇴근한 사람이 덜 헌신한 사람으로 보이는 착시는 여기서 생긴다.

이 착시는 제도와 결합하면 더 단단해진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온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로 수당을 사전에 임금에 포함시켜, 추가로 일한 시간에 대한 비용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야근이 회사에 추가 비용으로 또렷하게 인식되지 않으면, 야근을 줄일 동기도 약해진다. 정부가 최근 포괄임금제 오남용 근절과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정책 과제로 내건 것도 이런 구조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다만 균형 잡힌 시선도 필요하다. 시간 단축이 곧 만능이라는 주장은 위험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025년 9월 보고서에서, 시간당 생산성 향상 없이 근로시간만 줄이면 연간 생산 실적이 떨어지고 인건비 부담이 커져 노동집약 산업과 중소기업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의 임금은 연평균 4.0% 오른 반면 생산성은 1.7% 상승하는 데 그쳤다. 경기도 시범사업에서도 그늘은 있었다. 업무량 자체는 그대로인 채 시간만 줄면서, 노동자들이 가장 큰 애로로 '근로시간 내 업무 미완결'(22.4%)을 꼽은 것이다. 업무 프로세스를 함께 바꾸지 않은 채 같은 일을 짧은 시간에 욱여넣으면, 단축은 오히려 '압축노동'이라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된다. 결국 핵심은 시간을 깎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시간 안에서 일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야근의 의미를 다시 정의할 수 있다. 모든 야근이 비효율의 증거는 아니다. 마감을 앞둔 프로젝트, 예상치 못한 수요 급증, 창업 초기의 집중 투입처럼, 특정 시기에 시간을 몰아 쓰는 것은 합리적이고 때로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일시적 집중이 아니라, 야근이 상시화되고 그 자체가 조직의 문화이자 충성심의 척도로 굳어지는 상태다. 가끔의 전력 질주는 전략이지만, 매일의 야근은 대개 설계의 실패다. 즉 만성적 야근은 직원의 헌신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라, 경영의 어딘가가 고장 났다는 진단 신호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경영자를 위한 질문: 당신은 무엇을 측정하고 있는가

이 지점에서 경영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 조직은 투입을 보상하는가, 산출을 보상하는가. 만약 어떤 직원이 오후 6시에 핵심 성과를 모두 끝내고 퇴근했는데, 옆자리에서 밤 10시까지 같은 일을 붙들고 있던 동료가 더 인정받는다면, 그 조직은 효율을 처벌하고 비효율을 보상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은 이 신호를 정확히 읽어내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척하거나, 회사를 떠나거나.

한국 사회는 지금 이 질문을 국가 차원에서 마주하고 있다. 정부는 연간 실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OECD 평균인 1,700시간대로 낮추겠다는 목표 아래 주 4.5일제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2026년 예산에는 시범사업비 324억 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실근로시간단축지원법 제정을 우선 추진하고, 2027년 이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단계적으로 확산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경기도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운영하는 시범사업은 그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전국 확산과 법제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임금 유지 가능성, 중소기업의 부담, 업종별 차이 등 풀어야 할 쟁점은 많다. 그러나 이 흐름이 던지는 본질적 메시지는 정책 찬반을 떠나 분명하다. 시간을 더 쓰는 경쟁에서 시간을 더 잘 쓰는 경쟁으로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영자는 무엇부터 점검해야 할까. 거창한 제도 개편보다 먼저 자기 조직의 '야근 신호'를 진단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특정 부서의 야근이 만성적이라면, 그 부서가 가장 헌신적인 부서라고 결론짓기 전에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업무량 자체가 인력에 비해 과도한 것은 아닌가. 우선순위가 불분명해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이 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사결정이 위로 몰려 아래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아닌가.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이 야근의 진짜 원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경기도 사례가 보여주듯, 시간을 줄이기에 앞서 일하는 방식부터 바꾸지 않으면 단축은 압축노동으로 변질된다. 헌신을 칭찬하는 것으로는 이 중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야근을 미덕으로 보상할수록, 구조적 문제는 직원 개인의 인내로 가려진 채 방치된다.

야근이 많은 회사가 곧 일을 열심히 하는 회사라는 등식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다. 그 시대에는 투입한 시간이 곧 산출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더 오래 서 있으면 더 많은 제품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과 창의성이 가치를 만드는 오늘날, 가치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의 밀도에서 나온다. 진짜 질문은 "우리 직원들이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아니라 "우리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가치를 만들어내는가"여야 한다. 밤늦게 켜진 사무실 불빛은 헌신의 증거일 수도 있지만, 똑같이 자주, 무언가가 잘못 설계되어 있다는 경고등이기도 하다. 그 불빛을 미덕으로 칭송할 것인지, 진단 신호로 읽을 것인지. 그 선택이 앞으로 10년간 한 조직의 경쟁력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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