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민간 비축 200일분 확보에도 물가 3.1% 충격…기관들 "6월 통항 정상화가 분수령"
2026년 상반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뒤흔든 단어는 단연 '호르무즈'다. 지난 2월 28일 이란 혁명수비대(IRGC) 해군이 VHF 무선 주파수로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금지한다"는 방송을 송출하면서 사태가 본격화됐고, 이후 부분적 정상화가 진행됐지만 6월 현재까지도 통항 일부 회복과 지정학적 긴장이 공존하는 '부분 회복·리스크 지속'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봉쇄 사태가 100일을 넘긴 지금, 한국의 에너지 안보 상태를 비축량·유가·구조적 리스크 세 측면에서 점검했다.
한국 비축유, 정부·민간 합산 200일분…IEA 기준 세계 6위
결론부터 말하면 단기 수급 여력은 '충분한 편'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26년 2월 말 기준 국내에는 9개 비축기지, 총 1억 4,600만 배럴 규모의 비축시설이 운영 중이며 정부 비축유는 약 1억 배럴(공동비축물량 제외) 수준이었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3월 3일 '중동 상황 점검 긴급 관계부처회의' 브리핑에서 정부·민간 합산 석유 비축량이 200일 이상 사용 가능한 규모라고 밝혔다.
국제 비교에서도 상위권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25년 9월 말 IEA 기준 한국의 석유비축 지속 일수는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헝가리, 일본에 이어 세계 6위를 기록했다. IEA는 회원국에 원유 순수입량 기준 최소 90일분의 비축유 확보를 권고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다만 비축유는 이미 한 차례 대규모로 풀렸다. 정부는 3월 IEA 회원국 공조 방출(총 4억 배럴)의 일환으로 역대 최대인 2,246만 배럴 방출을 결정했다. 이는 종전 최대였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방출량(1,165만 배럴)의 약 2배이며, IEA 전체 물량의 약 5.6%에 해당한다. 국내 하루 평균 석유 소비량이 약 280만 배럴인 점을 감안하면 약 8일분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방출 이후 남은 정부 비축유는 약 8,000만 배럴 수준으로 추산된다. 280만 배럴 기준 단순 계산 시 정부 비축유만으로 약 29일, 민간 재고와 수입 중인 물량을 합치면 정부 발표대로 6개월 이상을 버틸 수 있는 구조다.
유가는 어디까지 왔나…브렌트 119달러 찍고 90달러대 공방
올해 유가 흐름은 극단적이었다. 브렌트유는 1월 6일 배럴당 59.45달러까지 내려갔다가 봉쇄 충격이 정점에 달한 3월 8일 119.4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고, 2026년 연평균은 87.35달러 수준이다. 6월 들어서는 WTI가 배럴당 89~93달러대에서 거래되는 등 정점 대비로는 진정됐지만 위기 이전(50~60달러대) 대비 여전히 50% 이상 높은 수준이다.
국내 체감 가격도 고공행진 중이다. 오피넷에 따르면 5월 말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은 리터당 약 2,010원, 경유는 약 2,005원으로 리터당 2,000원 선이 굳어졌다. 정부는 3월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를 유지하며 5월에도 최고가격을 동결했는데, 문신학 차관은 "유가 상승이 물류비와 생산비 증가로 이어져 화물차 운전자와 택배기사, 농·어업인 등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며 민생·물가 안정을 동결 이유로 들었다.
물가 충격은 이미 지표로 확인된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해 2024년 3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석유류 가격은 24.2% 급등해 휘발유·경유 기준 3년 10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을 보였다.
유가 안정 시점은 언제…기관별로 갈리는 전망
핵심 변수는 통항 정상화 속도다. 4월 8일 미국-이란 휴전 합의 이후 통항 재개 여건이 마련됐지만 정상화 속도를 놓고 글로벌 기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골드만삭스는 "단기 내 재개방 시작 및 6월 말까지 완전 통항 완료"를 기본 시나리오로 설정하고 2026년 말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90달러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RBC(캐나다왕립은행)는 시장이 봉쇄 지속 기간과 에너지 시스템 충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봉쇄가 6월 말까지 연장되면 누적 공급 손실이 15억 배럴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도 "6월 안에 해협이 재개돼 미국과 중국의 완충 여력이 일부 남아 있는 것"을 기본 시나리오로 보면서도, 봉쇄가 6월 말이나 7월까지 이어진다면 브렌트유 현물가격이 급격한 조정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설령 해협이 내일 재개돼도 생산시설 복구와 운송 정상화에 시간이 걸려 2026년 남은 기간 약 10억 배럴의 추가 공급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IEA 역시 6월부터 통항이 점진 재개된다는 가정하에 2026년 세계 원유 공급이 하루 390만 배럴 감소하고, 수요 대비 178만 배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종합하면 '해협이 6월 중 정상화될 경우' 유가는 3분기 중 90달러대 안착, 연말 80달러대 후반~90달러 수준으로 점진 하향하는 경로가 다수 기관의 기본 시나리오다. 국내 소비자물가 측면에서는 더 보수적인 시각도 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이란 전쟁이 끝나더라도 물가가 정상화되기까지 최소 6개월은 걸리기 때문에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국제유가가 안정되더라도 국내 물가 체감 안정은 빨라야 2026년 말~2027년 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구조적 약점…중동 의존 69%, 호르무즈 경유 95%
이번 사태가 드러낸 한국 에너지 구조의 약점은 분명하다. 한국의 중동 원유 도입 비중은 2025년 기준 전체의 69.1%에 달하며,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해상 교역량의 약 27%가 지나는 핵심 수송로로, 전체 폭 55㎞ 중 유조선 통항 가능 구간은 10㎞ 이내이며 모두 이란 영해다.
우회로의 한계도 확인됐다. 사우디·UAE 송유관 등 우회 수송 능력은 하루 원유 물동량(약 2,000만 배럴)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우회 루트를 이용하면 수송 비용이 50~80%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와 업계는 공급선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2025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많은 원유를 수입한 국가로,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가 핵심 대안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한국석유공사는 5월 14일 미국산 원유 210만 배럴 입고 현장을 점검하는 등 비축유 재확보와 도입선 다변화를 병행 중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문제들
첫째, 물가의 2차 파급이다. 석유류 24.2% 급등은 시차를 두고 운송비→식료품·공산품 가격으로 전이된다. 5월 물가 3.1%는 시작점일 수 있으며,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여력도 제약된다.
둘째, 비축유 재확보 비용이다. 90달러대 고유가 국면에서 방출분 2,246만 배럴을 다시 채워야 하는 만큼 저가 방출-고가 매입의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
셋째, 해상 물류 리스크의 상시화다. 통항 차질은 유가 상승에 그치지 않고 전쟁위험보험료 급등, 해상 운임 상승, 글로벌 물류비 증가로 이어지는 공급망 전반의 비용 충격으로 이미 확산됐다.
넷째, LNG 변수다. 호르무즈는 전 세계 LNG의 약 20%가 지나는 길목으로, 카타르산 LNG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겨울철 난방 수요기를 앞두고 가스 수급·요금 리스크를 추가로 안게 된다.
요약하면, 한국의 석유 비축은 '단기 충격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이번 위기는 비축이 아닌 '경로'의 문제, 즉 호르무즈 단일 수송로 의존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비축일수 세계 6위라는 성적표보다, 도입선 다변화와 대체 수송로 확보라는 더 어려운 숙제가 남았다.

![세계 석유 해상 교역량의 27%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2026년 봉쇄 사태는 이 단 하나의 수로에 에너지 안보를 의존해온 한국의 구조적 취약성을 정면으로 드러냈다.[사진 = KBR 자료사진]](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articles/2026/06/11/1781157146726-1301c5ee-6bad-4425-863a-f2c14cbe317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