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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의 경영 전략: 기업은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겨야 하나

한국 잠재성장률이 1%대(약 1.8%)로 내려앉고 2040년대엔 0% 내외까지 떨어질 전망으로, 시장 확장에 기댄 성장 모델이 더는 통하지 않는 구조적 저성장기에 진입했다.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이 42.8%(역대 최고), 한계기업 비중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기업 체력의 양극화가 심화됐고, 부실기업의 자원 점유는 정상기업의 성장까지 끌어내리는 혼잡효과를 낳는다. 줄여야 할 것은 핵심과 무관한 사업 포트폴리오, 성장 관성에서 누적된 고정비, 마진·현금흐름이 약한 외형이며, 무차별 감축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따른 '선별'이 핵심이다. 끝까지 남겨야 할 것은 핵심 인재와 조직 역량, 디지털·AI 등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선별적 투자, 그리고 외부 충격을 버티는 재무 건전성과 현금 여력이다. 저성장기 경영자의 질문은 '어떻게 더 빨리 성장할 것인가'에서 '무엇을 줄이고 남겨 다음 사이클을 견딜 체력을 만들 것인가'로 바뀌었으며, 결국 전략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아는 데서 시작된다.

이우리 선임기자입력 2026년 6월 16일수정 2026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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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기의 생존은 무엇을 견디고 무엇에 자원을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다 — 균열 속에서도 다음 성장의 토대는 만들어진다.[사진 = KBR 자료사진]
저성장기의 생존은 무엇을 견디고 무엇에 자원을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다 — 균열 속에서도 다음 성장의 토대는 만들어진다.[사진 = KBR 자료사진]

한국 잠재성장률이 1%대(약 1.8%)로 내려앉고 2040년대엔 0% 내외까지 떨어질 전망으로, 시장 확장에 기댄 성장 모델이 더는 통하지 않는 구조적 저성장기에 진입했다.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이 42.8%(역대 최고), 한계기업 비중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기업 체력의 양극화가 심화됐고, 부실기업의 자원 점유는 정상기업의 성장까지 끌어내리는 혼잡효과를 낳는다. 줄여야 할 것은 핵심과 무관한 사업 포트폴리오, 성장 관성에서 누적된 고정비, 마진·현금흐름이 약한 외형이며, 무차별 감축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따른 '선별'이 핵심이다. 끝까지 남겨야 할 것은 핵심 인재와 조직 역량, 디지털·AI 등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선별적 투자, 그리고 외부 충격을 버티는 재무 건전성과 현금 여력이다. 저성장기 경영자의 질문은 '어떻게 더 빨리 성장할 것인가'에서 '무엇을 줄이고 남겨 다음 사이클을 견딜 체력을 만들 것인가'로 바뀌었으며, 결국 전략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아는 데서 시작된다.


잠재성장률 1%대 진입, 한계기업 17%의 시대 — 생존의 문법은 '확장'에서 '선별'로 바뀌었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점차 굳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2025년 11월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약 1.8% 수준으로 제시했으며, KDI 역시 2025년 상반기 전망에서 금년 잠재성장률을 1%대 후반으로 추정했다. 기준 시나리오에 따르면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으로 잠재성장률은 향후에도 하락세를 이어가 2040년대에는 0% 내외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대 초반 5% 내외였던 잠재성장률이 한 세대 만에 1%대로 내려앉은 셈이다.

저성장은 단순히 성장률 숫자가 낮아지는 현상이 아니다. 기업이 의존해온 성장 전제 자체가 무너지는 환경 변화다. 시장이 매년 커지던 시기에는 외형 확장이 곧 생존이었지만, 시장이 정체되거나 축소되는 국면에서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이 경영의 중심에 놓인다. 본고는 저성장 시대에 기업이 직면한 선택의 구조를 점검하고, 줄여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을 살펴본다.


저성장이 드러낸 기업 체력의 양극화

저성장 환경은 그동안 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기업 체력의 격차를 표면으로 끌어올린다. 한국은행이 2025년 10월 발표한 '2024년 연간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 비금융 영리법인기업 약 96만 개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즉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의 비중이 42.8%에 달했다. 이는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같은 보고서에서 이자보상비율 500% 이상인 우량 기업 비중은 전년 대비 하락한 반면, 하위 구간 비중이 늘어나며 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하는 흐름이 확인됐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이른바 한계기업의 누적 규모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기준으로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은 2025년 말 17.1%로,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업종별로는 부동산업과 숙박·음식업에서 한계기업 비중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 분석에서도 상장사 기준 한계기업 비중은 2016년 약 7%에서 2024년 3분기 약 20% 안팎으로 빠르게 상승해, 주요국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증가폭이 큰 것으로 집계됐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부실의 누적이 해당 기업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업종 내 한계기업 비중이 10%포인트 상승할 경우 같은 업종 정상기업의 매출액 증가율과 수익성 지표가 함께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부실기업이 시장에서 자원을 점유한 채 연명하면, 건전한 기업이 투자 자금과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이른바 혼잡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성장 국면에서 구조조정이 늦어질수록 그 비용은 산업 전체로 전가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무엇을 줄일 것인가 — 선별의 기준

저성장기에 기업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과제는 비용과 사업의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축소는 단기 수익을 방어할 수는 있어도 회복기의 성장 동력을 함께 깎아내는 위험을 안는다. 따라서 '줄이는 일'은 일률적 감축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기반한 선별이어야 한다.

첫째, 핵심 경쟁력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정리다. 시장이 확장되던 시기에는 인접 영역으로의 다각화가 위험 분산 수단이 됐지만, 저성장기에는 분산된 자원이 오히려 핵심 사업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이 1990년대 이후 장기 저성장을 거치며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고 본업 경쟁력에 자원을 재집중한 사례는 한국 기업에 참고가 된다. 다만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비핵심인지에 대한 판단은 단기 수익성만이 아니라 장기적 시장 지위와 기술 자산까지 고려해 신중히 내려야 한다.

둘째, 고정비 구조의 재점검이다. 시장 성장에 기대어 누적된 고정비는 매출이 정체되는 순간 수익성을 빠르게 잠식한다. 다만 고정비 절감이 인력 감축으로 단순화될 경우, 회복기에 필요한 역량까지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용 구조 개편은 어떤 비용이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투자이고 어떤 비용이 과거 성장의 관성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구분하는 작업에 가깝다.

셋째, 수익성 없는 외형의 정리다. 매출 규모 자체를 목표로 삼던 관행은 저성장기에 재검토 대상이 된다. 외형은 크지만 마진이 얇거나 운전자본 부담이 큰 사업은, 시장이 정체되면 현금흐름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외형보다 현금흐름과 자본효율을 중심으로 사업을 평가하는 관점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 지켜야 할 자산

줄이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끝까지 지킬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저성장기의 구조조정이 자칫 미래 역량까지 소진하는 방향으로 흐르면, 시장이 회복될 때 반등할 토대를 잃게 된다.

첫째, 핵심 인재와 조직 역량이다. 비용 압박이 클수록 인력은 가장 손쉬운 감축 대상이 되지만, 축적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문 역량과 핵심 인재는 한번 유출되면 회복이 어렵다. 저성장기일수록 한정된 자원을 핵심 인재 유지에 우선 배분하는 선택이 장기 경쟁력을 좌우한다.

둘째,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선별적 투자다. 모든 투자를 일률적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회복기와 다음 성장 사이클을 겨냥한 영역에는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AI 기반의 운영 효율화는 저성장기에 오히려 투자 우선순위가 높아지는 영역으로 꼽힌다. 비용을 줄이면서 동시에 생산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 컨설팅 시장에서도 디지털 전환 부문이 향후 가장 빠르게 성장할 영역으로 전망되는 것은 기업들이 기술 투자를 통한 효율화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재무 건전성과 현금 여력이다. 저성장기에는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 능력이 곧 생존력이다. 부채에 의존한 성장 모델은 금리 환경이 바뀌면 빠르게 취약해진다.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이 40%를 넘는 현 상황은, 차입에 기댄 외형 확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경고로 읽을 수 있다. 현금흐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재무 여력을 유지하는 기업이 저성장 국면을 견디고 회복기에 기회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


선별의 시대, 경영자의 질문이 바뀐다

저성장은 위기인 동시에 기업 간 격차를 재편하는 분기점이다. 시장이 함께 커지던 시기에는 평균적인 기업도 성장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었지만, 시장이 정체된 국면에서는 선별적 판단의 질이 기업의 운명을 가른다. 한계기업 비중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하는 현재의 지표들은, 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기업은 무너지고 어떤 기업은 점유율을 키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질문도 달라졌다. '어떻게 더 빨리 성장할 것인가'에서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겨, 다음 사이클을 견딜 체력을 만들 것인가'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줄이는 일은 미래를 깎아내는 후퇴가 아니라, 핵심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 남기는 일은 관성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회복기를 위한 의도적 투자여야 한다. 저성장 시대의 경영 전략은 결국,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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