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제2의 재무제표' 시대가 열렸다 — 제도는 닻을 내렸지만 현장의 시계는 아직 어긋나 있다
'5년의 표류' 끝에 확정된 한국형 공시 체계
2026년은 한국 ESG 제도사에서 분수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2026년 2월 25일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 로드맵(안)」을 공개하며 2028년부터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단계적 의무화 일정을 제시했고, 다음 날인 26일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서 제1호와 제2호를 최종 의결했다. 금융위원회는 2021년 로드맵에서 2025년부터 단계적 의무화를 예고했으나 2023년 10월 '2026년 이후'로 연기를 공식 발표했고, 2024년에도 "의무화 시기는 확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검토와 논의에 머물던 제도가 마침내 시행 설계 단계로 이동한 것이다.
확정된 체계의 골격은 이렇다. 첫 적용 대상은 연결자산총액 30조 원 이상 약 58개 기업이며, 이듬해에는 자산 10조 원 이상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된다. 가치사슬 전반의 배출량을 다루는 Scope 3는 의무공시 시작 이후 3년의 유예 기간을 두었다. 운영 형식은 한국거래소 공시규정에 따른 거래소 공시로 시작한 뒤 제도가 안착되는 시점에 자본시장법상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방안이 제시되었고, 도입 초기에는 추정·예측 정보에 대한 면책을 허용하며 제재보다 계도 중심의 운영 기조를 유지한다는 점도 명시되었다.
이번에 의결된 두 기준이 ISSB의 IFRS S1·S2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은 핵심적이다.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전제로 국내 여건을 반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글로벌 투자자가 한국 기업의 공시를 다른 나라 기업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다만 비판도 있다. 1차 공시 대상이 전체 상장사의 약 7%에 해당하고 이 중 상당수가 금융회사라는 점에서, 배출량과 산업전환 리스크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도의 출발선은 그어졌지만, 한국 산업의 탄소 리스크가 집중된 제조 현장을 얼마나 빨리 포괄할 수 있느냐가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
글로벌 기준은 '완화'가 아니라 '재설계' 중이다
한국이 제도를 확정하는 사이, 글로벌 기준 자체도 큰 폭으로 움직였다. EU 이사회는 2026년 2월 24일 옴니버스 I 간소화 패키지를 공식 채택했고, 2026년 3월 18일 발효되면서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과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이 동시에 대폭 개편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ESG 규제의 후퇴'로 읽는다. 실제로 CSRD 적용 기준이 직원 수 1,000명 이상 등으로 상향되며 의무공시 대상 기업이 80%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되었고, 중견기업의 보고 일정도 연기됐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이 다르다.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CSDDD가 요구하는 실사 방식 자체의 변화로, '모든 1차 협력사에 같은 질문지를 돌리는' 형식적 실사는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으며 위험기반 실사(risk-based due diligence)의 원칙이 한층 명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적용 대상은 줄었지만, 남은 대상에게 요구되는 실사의 '질'은 오히려 정교해졌다는 의미다.
한국 기업에 대한 직접 적용도 사라지지 않았다. EU 내 일정 규모 이상 매출을 내는 한국 기업들은 CSRD와 CSDDD 모두 적용 대상이며, EU 역내 한국 기업 자회사도 규모 요건을 충족하면 CSRD 적용 대상이 된다. 글로벌 기준의 '간소화'를 준비 부담의 면제로 오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CBAM, 탄소가 '비용'이 된 첫해
2026년 한국 수출기업이 체감하는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CBAM은 2023년 10월부터 2025년 말까지의 전환 기간을 거쳐 2026년 1월 1일 본격 시행에 들어갔고,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산업군이 우선 적용 대상이다. 한국 수출 기업은 올해 수출 물량에 대한 탄소 비용을 내년부터 부담하게 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산업 경쟁력의 문법을 바꾼다고 본다. CBAM 아래에서는 탄소 배출량이 재무적 비용으로 연결되고, 생산 비용과 탄소 비용의 결합 효과가 경쟁력을 결정하며, 특히 EU는 MRV(측정·보고·검증) 체계를 갖추지 못한 기업에 보수적인 기본값을 적용해 추가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급격히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공급망 내부의 온도차다. CBAM이 제품 단위 배출량과 공급망 전 단계 탄소데이터 제출을 요구하면서, 철강·배터리·부품 기업들이 협력사 배출량 확보와 정밀 전과정평가(LCA) 산정을 둘러싼 대응 전략 재정비에 들어갔다. 대기업은 수년 전부터 대비해 왔지만, 협력사 단위로 내려갈수록 데이터 인프라 격차가 드러난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진단이다. 정부도 질의응답 상담창구, 맞춤형 기업 현장 진단, 전문교육, 탄소 감축설비 지원 등 CBAM 대응 지원을 2026년에도 지속할 계획이지만, 공급망 끝단까지 측정 역량이 닿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재생에너지, 가장 깊은 구조적 약점
공시와 통상규제가 '보고의 문제'라면, 재생에너지는 '실행의 문제'이며 한국 ESG의 가장 깊은 구조적 약점으로 꼽힌다. 글로벌 고객사의 압박은 이미 현실이다. 국내 부품사가 완성차 고객사의 재생에너지 요구 수준을 충족하지 못해 납품 기회를 잃은 사례가 알려질 만큼, RE100은 수주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조달 여건은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는 미국·유럽·중국 사업장의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완료했고 기타 해외 사업장 전환도 2027년 완료할 예정이지만, 국내 사업장 전환 비율은 공표하지 않았으며 단순 계산 시 2024년 기준 최대 19.8% 수준으로 추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사업장과 국내 사업장의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좁은 국토와 입지 조건 등 지리적 한계를 이유로 들지만, 환경단체들은 TSMC가 2040년을 목표로 하는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50년을 제시해 빠른 전환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한다. AI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국면에서 재생에너지 조달 능력은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변수로 직결되고 있다.
평가: 제도는 따라잡았다, 실행은 아직이다
그래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 기업의 ESG경영은 글로벌 기준에 맞춰 제대로 준비되고 있을까. 2026년 6월 시점의 답은 "제도적 정합성은 확보 단계에 들어섰으나, 실행 인프라는 여전히 비대칭적"이라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은 분명하다. 공시 기준이 ISSB 기반으로 확정되며 5년간의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대기업들은 CBAM 전환기간을 활용해 배출량 산정 체계를 구축해 왔다. 거래소 공시에서 법정공시로의 단계적 전환, 초기 면책 조항 등 연착륙 장치도 마련됐다.
반면 세 가지 격차가 남아 있다. 첫째, 기업 규모 간 격차다. 공시·실사·탄소데이터 모두 대기업과 협력사 사이의 역량 차이가 크고, 글로벌 규제는 공급망 전체의 데이터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둘째, 보고와 감축 사이의 격차다. 국내 배출권 가격이 낮아 감축 투자 유인이 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CBAM은 이 간극을 곧바로 무역비용으로 환산한다. 셋째, 에너지 인프라 격차다. 재생에너지 조달이 막히면 기업이 아무리 의지를 가져도 RE100과 Scope 2 감축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2028년 첫 의무공시까지 남은 시간은 약 2년이다. 이 기간을 '보고서 작성 준비기간'으로 쓰는 기업과 '감축·데이터·에너지 전환의 실행기간'으로 쓰는 기업의 격차는, 공시가 시작되는 순간 숫자로 드러나게 된다. ESG가 제2의 재무제표가 된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거기에 있다.

![2026년 KSSB 공시기준 확정과 CBAM 본격 시행으로 한국 기업의 ESG경영은 제도 정비 단계를 지나 실행 역량을 검증받는 국면에 들어섰다. [사진 = KBR 자료사진]](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articles/2026/06/11/1781155046481-bc7242d0-adcc-4dc0-bd7a-4dc85f69587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