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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리스크를 이사회 안건으로 올려야 하는 이유

기후 리스크는 환경팀의 운영 업무에서 이사회가 직접 감독해야 할 최상위 의제로 격상되고 있으며, 이제 '비재무 정보'가 아닌 '재무적 위험과 기회'로 평가된다. TCFD를 계승한 ISSB와 국내 KSSB 제2호 공시기준은 4대 요소 중 '거버넌스'를 첫머리에 놓고, 이사회·경영진의 감독 책임과 보고 빈도, 기후 목표·보상 연계까지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 즉 기후 리스크를 이사회 안건으로 강제 상정시키는 장치다. 한국은 금융위가 공시 의무화를 2026년 이후로 추진 중이며, 시나리오 분석 등 매년 반복되는 정량 공시를 감당할 내부 역량 구축이 관건인데 이는 예산·조직 결정권을 쥔 이사회 승인 사안이다. 글로벌 거버넌스 논의에서는 기후 감독 실패가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및 법적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으나(미국 델라웨어 판례·ISS 기준 등), 관할권마다 해석이 갈리며 한국 법체계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기후 리스크는 투자 리스크"라는 인식 아래 투자자가 이사회의 감독 체계를 기업 가치 평가 지표로 읽는 만큼, 기업은 정기 안건화·감독 책임 명확화·목표와 보상 연계라는 세 가지로 차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강지혜 선임기자입력 2026년 6월 16일수정 2026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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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 전환 과정의 리스크와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 피해는 이제 기업 재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이를 누가, 어떤 구조에서 감독하는가가 기업의 리스크 관리 성숙도를 가른다.[사진 = KBR 자료사진]
저탄소 전환 과정의 리스크와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 피해는 이제 기업 재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이를 누가, 어떤 구조에서 감독하는가가 기업의 리스크 관리 성숙도를 가른다.[사진 = KBR 자료사진]

기후 리스크는 환경팀의 운영 업무에서 이사회가 직접 감독해야 할 최상위 의제로 격상되고 있으며, 이제 '비재무 정보'가 아닌 '재무적 위험과 기회'로 평가된다. TCFD를 계승한 ISSB와 국내 KSSB 제2호 공시기준은 4대 요소 중 '거버넌스'를 첫머리에 놓고, 이사회·경영진의 감독 책임과 보고 빈도, 기후 목표·보상 연계까지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 즉 기후 리스크를 이사회 안건으로 강제 상정시키는 장치다. 한국은 금융위가 공시 의무화를 2026년 이후로 추진 중이며, 시나리오 분석 등 매년 반복되는 정량 공시를 감당할 내부 역량 구축이 관건인데 이는 예산·조직 결정권을 쥔 이사회 승인 사안이다. 글로벌 거버넌스 논의에서는 기후 감독 실패가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및 법적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으나(미국 델라웨어 판례·ISS 기준 등), 관할권마다 해석이 갈리며 한국 법체계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기후 리스크는 투자 리스크"라는 인식 아래 투자자가 이사회의 감독 체계를 기업 가치 평가 지표로 읽는 만큼, 기업은 정기 안건화·감독 책임 명확화·목표와 보상 연계라는 세 가지로 차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환경 부서의 일이 아니다 — 거버넌스 공시 의무화와 이사의 선관주의의무가 만나는 지점


기후 리스크는 오랫동안 기업 내부에서 환경·안전 부서나 ESG 전담팀의 업무로 여겨져 왔다. 탄소 배출량을 집계하고, 보고서를 발간하고, 규제 동향을 점검하는 일은 실무 단위에서 처리되는 '운영의 문제'였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국내외 공시 제도와 거버넌스 규범이 빠르게 정비되면서, 기후 리스크는 실무 현안을 넘어 이사회가 직접 들여다봐야 할 최상위 의제로 격상되고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기후 리스크가 이제 '비재무 정보'가 아니라 '재무적 위험과 기회'로 평가되기 시작했고, 그 감독 책임의 정점에 이사회가 놓였다는 점이다.


공시 기준이 이사회를 정조준하다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공시 기준에서 나타난다. 오랫동안 기후공시의 국제 표준으로 기능했던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는 2023년을 끝으로 그 역할을 마무리하고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체계로 통합되었다. TCFD는 기후 리스크를 거버넌스,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라는 4대 항목으로 나누어 공시하도록 했는데, 이 구조의 가장 첫 자리에 '거버넌스'가 놓여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기후 정보를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하느냐 이전에, '누가 이 리스크를 감독하는가'를 먼저 묻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국내 기준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된다.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마련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서 제2호 '기후 관련 공시사항'은 TCFD 권고안과 동일한 4대 요소 구조를 따른다. 그중 거버넌스 영역은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를 감독할 책임이 있는 의사결정기구, 즉 이사회와 경영진의 역할을 명시적으로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구체적으로는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가 이사회의 책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전략 감독을 위한 적절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지, 이사회에 대한 보고 빈도는 어떠한지, 그리고 기후 목표 설정과 진척도 감독을 어떻게 수행하며 그 성과 지표가 임원 보상 정책에 포함되는지까지 밝히도록 한다.

주목할 점은 이 공시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사실의 기록이라는 데 있다. '이사회가 기후 리스크를 감독한다'고 보고서에 적으려면, 실제로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되고, 논의되고, 의사록에 남는 절차가 전제되어야 한다.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은 사안을 감독했다고 공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후 공시 의무화는 기후 리스크를 이사회 테이블 위에 강제로 올려놓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한다.


한국의 공시 로드맵, 준비 시간은 길지 않다

한국은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1년 국내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공시 의무화 계획을 발표하고, 도입 시점을 2026년 이후로 추진해왔다. KSSB는 ISSB 기준을 바탕으로 국제 정합성과 국내 수용 가능성을 균형 있게 고려한다는 원칙 아래 공시기준 제정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제1호(일반사항)와 제2호(기후) 등 기준서 세트를 의결·공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만 의무 적용의 구체적 시점과 대상 범위는 정책 당국의 최종 로드맵에 따라 확정되는 사안인 만큼, 기업은 확정된 부분과 아직 형성 중인 부분을 구분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

준비의 난도도 가볍지 않다. KSSB 제2호는 시나리오 분석에 사용한 방법과 시점, 채택한 시나리오와 주요 가정을 함께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정성적 검토를 넘어, 기후 변수가 매출·비용·자산가치·투자계획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체계를 요구한다는 의미다. 한 번의 외부 컨설팅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공시 주기를 감당할 내부 분석 역량의 정착이 관건이다. 이런 체계를 갖추는 일은 실무진의 노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예산 배정, 조직 신설, 데이터 인프라 투자 같은 결정은 결국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감독 실패는 이제 법적 리스크가 된다

기후 리스크를 이사회 안건으로 올려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공시 제도 바깥, 즉 이사의 의무와 책임이라는 영역에서 나온다. 글로벌 거버넌스 논의에서는 기후 리스크에 대한 이사회의 감독을 선관주의의무(duty of care)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미국 델라웨어주의 판례는 이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점을 제공한다. 2019년 Marchand v. Barnhill 판결은, 중대한 리스크에 대해 이사회 차원의 합리적인 모니터링·보고 체계가 존재하도록 보장하지 못한 이사가 책임을 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핵심은 결과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리스크를 감독할 '시스템 자체를 갖추었는가'를 묻는다는 점이다. 학계에서도 기후변화와 자연자본 손실이 기업에 재무적으로 중대한 위험을 만드는 만큼, 이사와 임원이 산업별 기후 리스크를 식별·관리하는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니터링하지 못할 경우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이 영역은 관할권에 따라 해석이 크게 갈린다는 점을 함께 짚어야 한다. 같은 미국 내에서도 한편에서는 기후 리스크를 고려하는 것이 수탁자 의무라는 논리가, 다른 한편에서는 ESG 요소 고려를 제한하려는 100건 이상의 주(州) 단위 법안과 소송이 동시에 존재한다. 한 델라웨어 법원은 이사의 수탁자 의무가 '분산투자자로서의 주주'에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고 보아 관련 소송을 기각하기도 했다. 즉 기후 감독 의무의 법적 범위는 아직 형성 중인 영역이며, 국가와 제도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르다. 한국의 법체계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방향성은 비교적 일관된다. 의결권 자문기관과 기관투자자들은 기후를 포함한 환경·사회 이슈에 대한 명백한 감독 실패를 이사 선임 반대의 사유로 명시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는 환경·사회 이슈에 대한 중대한 리스크 감독 실패를 이사 개인 또는 이사회 전체에 대한 반대표 행사의 예외적 사유로 제시한다. 보유 지분을 통해 기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기후 감독을 이사회의 본질적 책무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자는 이미 '기후 리스크는 투자 리스크'로 읽고 있다

제도와 법리가 이사회를 향하는 근본 배경에는 자본시장의 인식 변화가 있다. 과거의 기후 정보 공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에너지 사용량 같은 기술적 수치에 집중되어 있었고, 기후변화가 기업 재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다. 그러나 기후 리스크에 대한 불충분한 정보가 자산 가격의 왜곡과 비효율적 자본 배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일관되고 비교 가능한 기후 재무정보에 대한 투자자의 요구가 빠르게 증가했다.

이러한 인식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상징적인 문장으로 압축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던진 "기후 리스크는 투자 리스크"라는 명제는, 기후 대응이 자선이나 평판 관리가 아니라 투자 의사결정의 핵심 변수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널리 인용된다. 투자자에게 기후 공시는 기업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이며, 그 공시의 첫 페이지에 적히는 것이 바로 이사회의 감독 체계다. 투자자는 기업이 기후 리스크를 '누구의 책임으로, 어떤 빈도로, 어떤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다루는지를 보고 그 기업의 리스크 관리 성숙도를 가늠한다.


실무에서 이사회로: 무엇을 안건으로 올릴 것인가

그렇다면 기후 리스크를 이사회 안건으로 올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제 기구들이 제시하는 모범 관행은 비교적 명확한 그림을 그려준다.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를 이사회의 정기 반복 안건으로 포함하고, 온실가스 감축과 회복력 강화 조치를 점검하며, 기후 전략을 이사회가 직접 승인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나아가 이사회가 부문별 기후 리스크에 대해 정기적인 교육을 받고, 기후 리스크를 분석·해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이사를 두는 것, 특히 기후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는 최소 한 명 이상의 '기후 문해력'을 갖춘 이사를 확보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를 한국 기업의 현실에 맞춰 정리하면, 이사회 안건화의 출발점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기후 리스크를 일회성 보고가 아닌 정기 안건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분기 또는 반기 단위로 기후 리스크 현황과 대응 진척을 이사회에 보고하는 체계를 만드는 일이 시작점이 된다. 둘째, 감독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사회 전체가 감독하는 구조인지, 특정 위원회(예: ESG위원회 또는 감사위원회)에 위임하는 구조인지를 정하고 이를 내규에 반영해야 한다. 셋째, 기후 목표와 임원 보상의 연계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KSSB 제2호가 명시적으로 공시 대상으로 삼는 항목인 만큼, 이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향후 공시 품질을 좌우한다.


결론: 안건화는 비용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다

기후 리스크를 이사회 안건으로 올리는 일은 추가적인 행정 부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는 새로운 부담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리스크를 제대로 된 의사결정 구조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다. 공시 제도는 이사회의 감독을 사실로 기록하라 요구하고, 거버넌스 규범은 감독 실패를 책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자본시장은 그 감독 체계를 기업 가치 평가의 지표로 읽는다. 세 갈래의 압력이 모두 같은 방향, 즉 이사회를 향하고 있다.

물론 그 압력의 무게는 제도와 국가에 따라 다르고, 일부 영역은 여전히 형성 중이다. 따라서 기업에 필요한 것은 과장된 위기감이 아니라 차분한 준비다. 확정된 공시 의무에는 충실히 대비하되, 아직 형성 중인 법적 책임의 영역은 그 추이를 주시하며 거버넌스 체계를 단계적으로 정비해 나가는 균형이 요구된다. 분명한 것은, 기후 리스크가 이사회 테이블에 오르는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고 되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늦게 올리는 기업과 제때 올리는 기업의 격차는, 공시 시즌이 본격화될수록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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