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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발자국, 더 이상 '착한 마케팅'이 아니다 — 2026년 '제2 원가'가 되다

2026년 1월 CBAM 본격 시행, 2월 KSSB 확정을 기점으로 탄소발자국이 '측정 대상'에서 '지불·신고 대상'으로 바뀌었다. EU CBAM은 철강·알루미늄 등 6개 품목 수입에 탄소 비용을 부과하며, 1분기 인증서 가격은 톤당 75.36유로로 고시됐다(2026년 4월). CSRD·그린클레임·디지털제품여권(DPP)이 맞물리며, 기업 단위를 넘어 '제품 한 개'의 탄소(PCF)를 묻는 규제로 초점이 좁혀지고 있다. 한국은 2028년(FY2027) 자산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공시를 시작하되, 가장 까다로운 스코프 3는 2031년까지 3년 유예했다. 결국 검증 가능한 탄소 데이터 인프라를 갖춘 기업이 비용을 줄이고 수주 협상력까지 얻는 만큼, 유예기간은 '준비기간'이지 '면제'가 아니다.

이우리 선임기자입력 2026년 6월 24일수정 2026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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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하나에 공장과 도시, 일상이 모두 담겼다. 2026년 탄소발자국은 더 이상 상징이 아니라 관세와 공시로 청구되는 '비용'이 됐다.[이미지 = AI활용 생성 이미지 / KBR편집부]
발자국 하나에 공장과 도시, 일상이 모두 담겼다. 2026년 탄소발자국은 더 이상 상징이 아니라 관세와 공시로 청구되는 '비용'이 됐다.[이미지 = AI활용 생성 이미지 / KBR편집부]

2026년 1월 CBAM 본격 시행, 2월 KSSB 확정을 기점으로 탄소발자국이 '측정 대상'에서 '지불·신고 대상'으로 바뀌었다. EU CBAM은 철강·알루미늄 등 6개 품목 수입에 탄소 비용을 부과하며, 1분기 인증서 가격은 톤당 75.36유로로 고시됐다(2026년 4월). CSRD·그린클레임·디지털제품여권(DPP)이 맞물리며, 기업 단위를 넘어 '제품 한 개'의 탄소(PCF)를 묻는 규제로 초점이 좁혀지고 있다. 한국은 2028년(FY2027) 자산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공시를 시작하되, 가장 까다로운 스코프 3는 2031년까지 3년 유예했다. 결국 검증 가능한 탄소 데이터 인프라를 갖춘 기업이 비용을 줄이고 수주 협상력까지 얻는 만큼, 유예기간은 '준비기간'이지 '면제'가 아니다.

탄소발자국, 더 이상 '착한 마케팅'이 아니다

2026년, 제품에 찍힌 탄소 한 줄이 관세·공시·계약을 좌우하는 '제2의 원가'로 올라섰다


① 마케팅 용어에서 '비용 데이터'로

불과 몇 년 전까지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은 친환경 캠페인의 수사(修辭)에 가까웠다. 제품 포장에 붙은 나뭇잎 라벨, 기업 보고서 한 켠의 그래프 정도로 소비되던 개념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탄소발자국은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그것은 수입 관세를 결정하고, 공시 의무를 발생시키며, B2B 공급 계약의 통과 여부를 가르는 '정량 데이터'다.

변화의 분기점은 2026년 1월 1일이다. 이날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전환기를 끝내고 본격 이행 단계(definitive period)에 들어섰고, 같은 해 2월에는 한국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KSSB)이 최종 확정됐다. 탄소발자국이 측정 대상에서 '지불 대상'과 '신고 대상'으로 이동한 것이다.


② 탄소발자국이란 무엇인가 — Scope 1·2·3과 PCF

탄소발자국은 어떤 활동·제품·조직이 직간접적으로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이산화탄소 환산량(CO₂e)으로 표현한 값이다. 측정 경계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직접 배출인 스코프(Scope) 1, 전기·스팀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인 스코프 2, 그리고 원재료 채굴부터 운송·사용·폐기, 협력업체까지 가치사슬 전반을 포괄하는 스코프 3다. 일반적으로 제조 기업 배출량의 대부분은 통제 범위 밖인 스코프 3에 몰려 있어, 가장 측정이 어렵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꼽힌다.

조직 전체의 배출량을 다루는 '기업 단위' 산정과 별개로, 최근 규제의 초점은 '제품 단위'로 좁혀지고 있다. 이른바 제품 탄소발자국(PCF·Product Carbon Footprint)이다. 특정 제품 하나가 원료 단계부터 생산까지 얼마의 탄소를 배출했는지를 ISO 14067 등 표준에 따라 산정하는 방식으로, 공급망 데이터의 정밀도가 핵심이다. 기업 단위 보고가 '우리 회사가 얼마나 배출하는가'를 묻는다면, PCF는 '이 제품 한 개에 탄소가 얼마나 박혀 있는가'를 묻는다.


③ CBAM — 탄소발자국이 곧 '수입 비용'이 된 해

CBAM은 탄소발자국이 어떻게 직접적인 비용으로 전환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EU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6개 품목을 대상으로,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에 내재된 탄소 배출량만큼 'CBAM 인증서'를 구매·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2026년부터는 옴니버스 간소화로 도입된 '연 50톤' 기준이 적용되는데, 이는 배출량이 아니라 수입 물량(질량) 기준이다. 한 해 동안 들여오는 CBAM 품목이 누적 50톤(전력·수소 제외)을 넘는 기업이 '인증 신고인(Authorised Declarant)' 자격을 갖춰야 하며, 자격 신청 마감은 2026년 3월 31일이었다. [출처: EU 규정 2025/2083, 집행위·각국 관세당국]

핵심은 가격이다. 2026년 4월 7일 EU 집행위는 1분기 적용 CBAM 인증서 가격을 톤당 75.36유로로 처음 고시했다. 이는 직전 분기 EU 배출권거래제(ETS) 경매의 가중평균 가격에 연동된 값으로, 사실상 수입품에 적용되는 세계 첫 명시적 탄소 가격이다. 기준이 되는 ETS 배출권(EUA)은 2026년 6월 중순 톤당 80유로 안팎까지 올랐다. [출처: EU 집행위,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즉, 한국 수출기업이 EU에 철강을 보낼 때, 제품에 내재된 탄소가 많을수록 곧바로 더 큰 비용을 떠안게 되는 구조다.

실측 검증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하면 EU 집행위가 정한 '기본값(default value)'이 적용되는데, 이 기본값에는 실측 데이터 사용을 유도하기 위한 징벌적 할증(mark-up)이 얹힌다. 2025년 12월 31일 공표된 이행규정(IR 2025/2621)에 따르면, 철강·알루미늄·시멘트의 할증률은 2026년 10%, 2027년 20%, 2028년 이후 30%로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다만 공급망이 복잡한 비료는 전 기간 1%로 제한된다. [출처: EU IR 2025/2621, S&P Global·O'Melveny 등] 데이터가 없을수록 비용이 불리해지는 셈이다.

다만 실제 금전 정산은 2027년으로 유예돼 있다. 2026년 수입분에 대한 CBAM 인증서 판매는 2027년 2월 1일 시작되며, 첫 연례 신고와 인증서 제출 마감은 2027년 9월 30일이다. 미제출 등 미준수 시 초과 톤당 100유로 수준의 벌금이 부과된다. [출처: EU 집행위, ICAP] EU 집행위에 따르면 시행 직후인 2026년 1월 초 집계 기준 자격 신청 1만2000여 건이 접수됐고 4100여 곳이 신고인 자격을 확보했는데, 이 수치는 이후 계속 갱신된다.


④ 제품 탄소발자국의 제도화 — DPP와 공급망 압박

CBAM이 끝이 아니다. 2026년을 기점으로 PCF를 요구하는 규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한 산업 분석은 △CBAM의 내재 배출 보고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의 스코프 3 데이터 △환경 마케팅 주장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그린 클레임(Green Claims) 흐름 △디지털제품여권(DPP)을 PCF 확산의 4대 동인으로 꼽는다. [출처: 산업 분석자료]

특히 DPP는 제품에 QR코드 형태의 '디지털 신분증'을 부착해 소재 구성, 재활용 비율, 그리고 탄소발자국 데이터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담도록 한다. EU의 친환경설계규정(ESPR)에 근거해 2026년 배터리 여권이 단계적 시행에 들어갔으며, 섬유·전자·건설 등 다른 품목군은 위임법(delegated act) 제정 절차를 거쳐 2030년까지 순차 확대될 계획이다. 다만 품목별 정확한 시행 시점은 위임법이 확정돼야 정해지므로, 현재로서는 '확정된 일정'이라기보다 '이행 로드맵'에 가깝다. 그럼에도 제품 단위 탄소 데이터가 '있으면 좋은 것'에서 '없으면 시장 진입이 막히는 것'으로 바뀌는 흐름은 분명하다.

주의할 점은 산정 방식의 차이다. CBAM의 '내재 배출량'은 생산 공정의 직접 배출과 전력 관련 간접 배출만 포함해, 상류 공급망 전체를 보는 ISO 14067 기반 PCF보다 범위가 좁다. 같은 '탄소발자국'이라는 단어를 쓰더라도 제도마다 경계가 다르므로, 기업은 어떤 데이터를 어떤 기준으로 산정하는지 명확히 구분해 관리해야 한다.


⑤ 한국 — KSSB 확정과 'Scope 3 3년 유예'

국내에서도 2026년 2월이 분수령이었다. 2월 25일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 제도 로드맵 초안'을 공개했고, 다음 날인 26일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ISSB의 IFRS S1·S2를 기반으로 한 공시기준서 제1호(일반)와 제2호(기후)를 최종 의결했다. [출처: 금융위, 삼일PwC]

로드맵 초안에 따르면 첫 적용은 2028년(FY2027)으로, 연결자산총액 30조 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 약 58곳이 대상이다. 이듬해인 2029년(FY2028)에는 자산 10조 원 이상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가장 까다로운 스코프 3 배출량은 의무공시 개시 후 3년의 유예를 둬 2031년(FY2030)부터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협력업체가 방대한 국내 산업 구조에서 공급망 전체 데이터를 모으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다. [출처: 금융위, 비즈한국]

제도는 한국거래소 공시규정에 따른 거래소 공시로 출발한 뒤, 안착 시점에 자본시장법상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단계적 설계를 택했다. 도입 초기에는 추정·예측 정보에 대한 면책(세이프 하버)을 허용하고 제재보다 계도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방침도 명시됐다. 일본이 2027년 6월부터 시가총액 3조 엔 이상 프라임시장 기업에 공시를 의무화하는 점, 일부 국내 대기업이 2029년부터 EU 역외 공시 의무를 받게 된다는 점이 일정 설계에 함께 고려됐다.


⑥ 기업의 과제 — '측정 인프라'가 경쟁력이다

이 모든 흐름이 한 곳을 가리킨다. 탄소발자국 산정이 일회성 컨설팅 결과물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데이터 운영 체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CBAM은 검증된 실측값을, KSSB 제2호는 시나리오 분석을 내재화한 정량 체계를 요구한다. 공급망 협력사로부터 제품·설비 단위 배출 데이터를 받아낼 수 있는 거버넌스와 시스템을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비용·기회 격차는 빠르게 벌어질 전망이다.

반대로 검증 가능한 탄소 데이터를 먼저 확보한 기업은 협상력을 얻는다. 유럽 발주처가 모호한 '친환경' 표현보다 제3자 검증을 거친 환경성적표지(EPD)나 PCF를 제시하는 공급사를 선호하는 흐름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탄소 데이터가 '규제 대응 비용'이 아니라 '수주 무기'가 되는 국면이다.


KBR Insight

2026년의 핵심은 탄소발자국의 '소수점'이 곧 '가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2026년 2월 26일 관보에 게재돼 3월 18일 발효한 옴니버스 I 지침(Directive 2026/470)은 CSRD 의무 대상을 '종업원 1,000명 초과·순매출 4억5,000만 유로 초과' 기업으로 좁히고 산업별 기준을 삭제하는 등 적용 범위를 상당 폭 완화했다. 이를 두고 규제 강도가 약해졌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큰 골격은 유지된다고 본다. 역외 대기업에 대한 공시 의무(EU 내 매출 4억5,000만 유로 초과 등)와 CBAM의 비용 부과 구조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를 '전면 면제'로 오독하는 기업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한국 기업에게 스코프 3 3년 유예는 시간을 번 것이지, 면제받은 것이 아니다. CBAM은 이미 EU 수출분에 비용을 매기고 있고, DPP는 제품 단위 데이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유예 기간을 '준비 기간'으로 쓰는 기업과 '관망 기간'으로 흘려보내는 기업의 운명은 2028~2031년 사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탄소발자국은 더 이상 홍보팀의 일이 아니라, 재무·구매·공시가 함께 다뤄야 할 경영 데이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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