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 회사에는, ESG 부서가 별도로 존재할까?
ESG 전담조직을 따로 둘 것인가, 모든 부서에 ESG를 녹여 넣을 것인가. 2026년, 글로벌 기업들이 마주한 조직 설계의 분기점을 짚어본다.
"우리 회사에 ESG 부서가 따로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조직도를 확인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2026년 지속가능경영에서 가장 민감한 화두를 건드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ESG 전담조직 신설'은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에 진심이라는 증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의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ESG 전담조직과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CSO) 자리의 역할과 위상이 재조정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ESG를 모든 부서의 일상 업무로 '내재화'하려는 시도가 빨라지고 있다. 부서가 사라진다는 것은 ESG가 후퇴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한 단계 진화했다는 뜻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지금 전 세계 기업의 조직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흔들리는 'ESG 명패',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ESG
2025~2026년을 거치며 일부 글로벌 기업에서 CSO 조직이 재편되거나 역할이 조정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시장 변동성, 지정학적 충격, 비용 압박이 겹치면서 지속가능경영 책임자들은 더 까다롭고 정치화된 이사회 앞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몇몇 기업에서 고위급 ESG 책임자가 퇴장하거나 조직이 개편되면서, 일각에서는 CSO 직책이 재무·법무·리스크 등 다른 기능과 통합되거나 그 산하로 편입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CSO라는 명패가 흔들린다'는 것과 'ESG가 사라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채용 시장에서는 여전히 지속가능경영 담당 임원과 디렉터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고, 관련 예산 역시 전반적으로 크게 축소되기보다는 규제 대응과 데이터 관리, 공시 체계 구축 등으로 재배분되는 흐름이 강하다는 평가가 많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후퇴(retreat)라기보다 재편(restructuring)에 가깝다. 핵심은 ESG의 책임과 실행력이 어디로 옮겨가고 있는가다. 여러 글로벌 기업은 ESG 감독 기능을 이사회 산하 위원회로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최고재무책임자(CFO), 전사 리스크 관리, 법무·대외협력 조직과 ESG를 결합하는 사례를 늘려가고 있다. 기후 리스크와 지속가능성 성과가 점점 더 명백한 재무적 사안이 되면서, ESG를 비재무의 주변 이슈가 아니라 경영의 본류로 끌어들이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통합인가, 희석인가
이 재편을 바라보는 시각은 둘로 갈린다. 긍정론은 이를 'ESG의 주류화(mainstreaming)'로 본다. ESG가 한 부서의 특수 업무가 아니라 재무·운영·구매·법무 전반에 스며들면, 오히려 더 강력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살아남는 CSO는 '독립된 기능의 소유자'가 아니라, 각 부서를 연결하는 통합자이자 전략 자문가로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같은 맥락에 있다.
문제는 통합과 희석 사이의 경계가 매우 얇다는 점이다. ESG가 모든 부서의 일이 되는 순간, 자칫 '모두의 일이면서 동시에 누구의 일도 아닌' 상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눈에 보이는 권한과 예산, 그리고 의사결정 테이블에서의 발언권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재화'라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ESG가 슬그머니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해외에서는 규제·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친환경 성과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외부에 알리지 않는 '그린허싱(greenhushing)'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조직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결국 기업이 ESG를 진짜 실행할지 아니면 형식으로만 남길지를 가르는 갈림길이 되는 셈이다.
한국의 현실 — 위원회는 절반 넘겼지만, 무게추는 '내재화'로
그렇다면 한국 기업은 어디쯤 있을까. 국내 500대 기업의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 설치 비중은 2021년 44.5%에서 2022년 48.5%, 2023년 53.7%로 꾸준히 올라 최근에야 절반을 갓 넘어섰고, 가장 최근 집계에서는 57% 안팎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업종별 편차가 컸다. 식음료·조선기계·상사·통신 업종은 ESG위원회 설치 비중이 80%를 웃돈 반면, 여신금융·철강 업종은 30%를 밑도는 수준에 머물렀다. 자산 규모가 큰 대형사를 중심으로 위원회 설치는 사실상 보편화됐지만, 중견·중소기업으로 내려갈수록 여전히 별도 ESG 전담조직이나 위원회를 두지 않은 곳이 많다는 점도 확인된다.
제도 환경도 빠르게 구체화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2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토대로 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제도 로드맵 초안을 공개하고, 연결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대형 상장사부터 2028년(2027 사업연도) 정보에 대해 의무 공시를 시작하는 단계적 일정을 제시했다. 초기에는 추정·예측 정보에 대한 일정 수준의 면책을 허용하고, 제재보다 계도와 적응 지원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방침도 함께 밝혔다. 다만 적용 시점과 대상 기준(30조원이냐, 향후 2조원 등으로 확대할 것이냐)을 둘러싼 세부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최종 로드맵과 법제화 형태는 실제 시행 전 한 번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공시가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서 '언제·어디까지'의 문제로 이미 넘어왔다는 점이다.
기업 현장의 무게중심도 옮겨가고 있다. ESG 컨설팅 기관 더씨에스알이 2025년 11월 발표한 이슈브리프에 따르면, 고객사 38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026년 최우선 과제로 'KSSB 기후공시 의무화 준비'를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고, 탄소중립 로드맵 정교화와 ESG 데이터 플랫폼 구축, 조직문화 내재화가 그 뒤를 이었다. 이 기관은 2026년을 '규제 대응형 ESG'에서 '실행 중심 ESG'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규정했다. 공공 부문에서도 기획재정부가 2025년 12월 공공기관 최초의 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그 적용이 ESG 담당 부서만의 과제가 아니라 환경·인사·안전·구매·감사 등 유관 부서의 협업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전담 부서가 혼자 끌고 가는 ESG가 아니라, 전사가 함께 움직이는 ESG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ESG 부서는 필요한가
핵심으로 돌아오자. '별도의 ESG 부서가 있는가'는 더 이상 좋은 질문이 아니다. 더 나은 질문은 '우리 회사에서 ESG가 실제 권한을 가지고 작동하는가'이다. 조직 설계에는 사실상 정답이 없다. CEO가 직접 챙기는 모델, CFO 산하에 두는 모델, 별도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모델, 각 부서에 책임을 분산하는 모델이 모두 존재하며, 어느 쪽이든 성공의 조건은 비슷하다. 경영진 차원의 명확한 책임 소재, 재무·운영·구매·법무를 가로지르는 부서 간 협업, ESG 전략을 이끌 전문성과 의사결정을 견제할 권한을 가진 중심 기능, 그리고 장기 리스크에 대한 이사회의 적극적 관여다.
운영자 관점에서 보면 판단 기준은 단순해진다. 전담 부서가 있는데 권한과 예산, 데이터 접근권이 없다면 그것은 '간판'에 가깝다. 반대로 전담 부서가 없더라도 ESG 성과가 임원 평가와 보상에 연동되고,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수집·관리되며, 의사결정 단계마다 ESG가 검토 항목으로 포함된다면 그 회사는 이미 ESG를 '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부서의 유무가 아니라, 권한과 데이터와 책임의 구조가 본질이다.
KBR 시각
KBR은 이 흐름을 'ESG의 소멸'이 아니라 'ESG의 성숙'으로 본다. 전담조직 신설이 1막이었다면, 2026년은 그 조직이 만든 체계를 전사로 확산시키는 2막의 초입에 가깝다. 다만 우리는 한 가지를 짚고자 한다. 통합은 권한을 동반할 때만 진화이며, 권한 없는 통합은 조용한 후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두의 ESG'가 '누구의 ESG도 아님'으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책임의 이름표가 어디에 붙어 있든 그 자리에 실질적 힘이 실려 있어야 한다. 결국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는 ESG 부서가 있는가"가 아니라, "ESG가 우리 의사결정을 실제로 바꾸고 있는가"여야 한다.

![ESG를 한 층에 가둔 전담 부서가 아니라, 건물 전체에 번져 있는 구조처럼. 지금 기업 조직도는 ‘ESG 부서가 있느냐’보다 ESG가 어디까지 스며들었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고 있다. [사진 = KBR 자료사진]](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articles/2026/06/22/1782096648901-f7b84c72-d0bb-4b31-8354-a092a56ca79d.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