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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문학] 거란의 역사에서 배우는 리더십

등록일 2020년08월04일 14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어김없다. 나라가 흥할 때는 혁신적인 지도자가 있었을 때이고 망할 때는 그 지도자가 사라진 후 변화를 멈추었을 때이다. 거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거란을 세 번 만난다. 한번은 발해가 거란에 멸망 당했을 때이고 또 한번은 서희가 외교담판으로 거란으로부터 강동 6주를 가져왔을 때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이다. 그런데 거란의 역사는 이렇게 세 번만 언급될 정도로 미약하지 않다. 그들은 900년대 초부터 1200년대 초 칭기즈칸이 등장할 때 까지 중국의 북방에 자리해 송나라로부터 조공까지 받던 강대국이었다. 중국을 서양말로 차이나라고 하는 것은 진나라의 진에서 유래했지만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는 중국을 지금도 ‘키타이’라고 부른다. ‘키타이’는 거란의 유럽식 표현이며 거란은 연철을 뜻한다. 거란이 있던 지방에서 철이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는 늘 세 개의 세력축이 있었다. 중국, 한반도 그리고 중국의 북쪽 지방.

중국이 진, 한, 수, 당, 송으로 내려오는 사이 한반도는 고조선, 삼국시대, 신라, 고려로 이어져 왔다. 그때 북방은 흉노, 동호, 선비, 거란, 여진, 몽골로 세력이 교체되었다.

중국이 자기들 말고는 다 오랑캐라고 말했을 뿐 북방민족도 찬란한 역사가 있었다. 흉노는 한나라에게서 조공을 받았고 거란 역시 송나라에게서 100년간이나 조공을 받았으며 여진은 송을 망하게까지 했다. 여진에 망한 송은 남쪽으로 내려가 남송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연명할 정도였다.

 


 

 

거란의 조상은 동호이며 동호에서 오환, 선비, 거란이 분파된다. 광개토대왕이 활약한 300년, 400년대에도 거란족은 존재했다. 그 뒤 거란을 그들의 국호로 삼고 발해를 멸망시킬 당시 전설적인 지도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야율아보기다. 거란은 916년 정식으로 건국되고 발해는 926년에 거란에 복속되어 이름이 동단으로 바뀌어 야율아보기의 아들 야율배의 통치를 받게 된다.

 

 

거란은 300년의 역사 가운데 두 번의 전성기를 맞는다. 첫 전성기는 건국자인 야율아보기 때이다. 이때 거란은 만주부터 중국 허베이성까지 장악한다. 야율아보기를 이은 야율덕광, 태종은 나라 이름을 요라고 바꾸고 자신을 중국 황제라 칭한다. 한차례 바람이 불고난 뒤 그 바람을 계속 유지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법이다. 황제가 된 태종은 문란한 삶을 살다가 947년 갑자기 죽게 된다. 그 뒤 거란은 982년 여걸 소작이 나타나기까지 여러 황제가 바뀌는 혼란을 맞는다. 소작은 16살에 궁으로 들어와 경종의 황후가 된 뒤, 사냥을 좋아하는 경종을 대신해 통치를 하기 시작한다. 소작은 내치뿐만 아니라 군사를 다루는 능력도 출중했다. 경종은 35세에 죽으며 왕위는 아들 야율융서, 성종에게 물려주되 군사는 소작이 맡으라고 말한다. 당시 경종의 나이는 12살에 불과했다. 군사를 맡은 여걸 소작은 동쪽으로 여진의 항복을 받고 남으로 송을 쳤으며 북으로는 철륵을 공격하고 서쪽으로 당항과 회골을 쳐 요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소작의 전성기는 전연의 맹약으로 정점을 찍는다. 1005년 송과의 전쟁 끝에 전연에서 조약을 맺는데 송은 해마다 비단 20만필과 은 10만냥을 바치기로 한다. 전연의 맹약은 100년이나 이어진다. 전연의 맹약 4년 후 소작은 화려한 생을 마감한다. 소작이 죽은 뒤 거란은 우여곡절 끝에 200년간 명맥을 유지하지만 한 번도 순탄할 날 없었다. 황제가 신하를 죽이고 황후가 자살하는 등 송에서 주는 조공이 아니었다면 버티기도 어려울 지경이 된다. 그때 변방에서 새로운 영웅이 출현한다. 여진족을 이끈 아골타다. 아골타는 1115년 국호를 금이라 명명하고 거란을 친다. 거란은 금을 형님이라 부르고 장춘과 요동땅을 내주고 해마다 은과 비단 25만냥을 바치기로 한다. 거란은 서쪽과 북쪽으로 흩어지고 야율순이 북요를, 천조제와 야율대석이 서요를 세워 간신히 명맥을 잇는다. 북요는 곧 멸망하지만 야율대석이 이끄는 서요는 중앙아시아의 일대를 차지하여 다시금 짧은 전성기를 맞지만 칭기즈칸의 출현과 함께 종말을 맞는다. 1218년의 일이다. 그 뒤 거란은 여진, 몽골, 한족 사이로 흩어지고 역사 앞에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목 마를 때 우물을 팔 수는 있으나 우물을 파고 나서도 도전정신을 유지하기는 힘든 법이다. 역사도 그렇다. 변화는 늘 변방에서 시작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거란은 300년의 역사 가운데 야율아보기, 여걸 소작 생존 당시에만 전성기를 맞았다. 영웅이 사라지자 영화도 사라졌다. 두 영웅을 이은 리더들은 안주하려고만 했지 새로운 도전을 거부했다. 도전하고 성취한 과실위에 자신을 죽이고 다시 시작하지 않는 이상, 역사의 주인공은 늘 바뀌기 마련이다. 도전하고 성취하는 자가 리더다. 이룩한 성취를 빠르게 부정할 줄 아는 자는 리더 중의 리더다.

 

 

 

 

글 : 손정, 와이즈먼코리아 겸임교수, [당신도 불통이다] [업무력] [글쓰기와 책쓰기] 저자

     유튜브 : 책 읽어 주는 강사, sjrain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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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 (mkkim@koreabizreview.com)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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